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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소한 일상을 담다.
♣... 2011년 스페인, 포르투칼

스페인 - 바르셀로나/마드리드

by 들국화/유채 2020. 9. 19.

스페인 여행기를 마치며......

이번 여행기도 임정호님의 여행기를 책으로 냈든 글과 회원님들이 찍으셨던 사진 저한테 있는 것으로   나름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스마트폰은 현지 시간으로 나오고 카메라는 한국 시간이다 보니 같은 장소에서 찍어도 날짜가 틀리기도 하고 글은 스페인 시간이고 사진은 또 한국 시간이다 보니 사진을 정리 하는데 조금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글과 사진이 달라도 이해 바랍니다.

사진은 제가 조금식 보정을 하고 올렸습니다.

코로나19로 방콕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지난 사진 꺼내여 추억 여행하는 기분도 나쁘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회원 여러분들도 조금 젊은 시절 기억하며 추억 여행 한번 떠나 보세요.

다시 한번 임정호님께 감사 드립니다.

글은 허락없이 올린점 양해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617() 여행의 일곱째 날 - 바르셀로나/마드리드

 

이틀 동안 투숙한 Eurostars Hotel에서 나와 짐을 버스에 싣고 인원을 확인하니 한동욱/김정수 부부가 안 보인다. 규봉이가 프론트에 가서 내선전화로 불러 내렸다. 그들 부부는 오늘 따라 830분 출발로 착각하고 있었다. 한 바탕 웃음이 지나갔다. 그러나 배터리를 충전하느라 카메라를 객실에 남겨둔 채로 그냥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공항에 도착해서였다. 이 카메라는 여행기간 중 카메라맨 병호가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고 숙소에 들어가면 동욱이네가 배터리를 충전시켜 다음날 다시 병호에게 넘겨주었었다. 가이드가 수차례 호텔에 전화를 걸어서 소재파악을 요청하였건만 매번 부정적인 대답뿐이었다. 그 사진기는 가격도 비싸지만, 전문가인 병호가 그룹전체, 부부, 남성 또는 여성만의 소그룹 등 중요사진들을 도맡아 찍어 왔기 때문에 우리 팀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카메라이다. 틀림없이 그곳에 있겠건만 상대방은 없다고 하니 답답하기만 하고 속수무책이다. 가이드에게 시간을 내서 직접 방문하여 한 번 더 알아봐 달라고 재삼 부탁하고 국내항공기에 올랐다. 여자의 몸으로 남들이 기피하는 총무직을 떠맡아, 힘들고 고된 업무를 스스로 감당해온 김정수 여사는 이로 인해 또 얼마나 괴로울까?

수다스럽긴 해도 우리를 열심히 데리고 다닌 심명호 가이드가 한 말이 생각난다. 과거 어느 책에선가 나도 읽었던 기억이 나는 말이긴 하다. 네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고 세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한 개의 행운을 찾고자 수많은 자잘한 행복을 짓밟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또한, 영어로 Present라는 단어는 현재라는 뜻이지만 선물이라는 의미도 있다. 현재는 일단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이다. 우리는 신이 주신 현재라는 소중한 선물을 가치 있게 써야 한다.

 

마드리드 공항에서는 이명제 가이드가 우리를 맞이한다. 버스에 오르자 자기소개에 이어 스페인의 역사와 경제 실상(實狀)에 대하여 설명을 계속한다. 조용한 성격이라 그런지 목소리에도 고저장단이 없어 뒷좌석에서는 주의집중이 안 된다. 지난 6개월간 집에서 가족과 함께한 날은 딱 2일 뿐이라니 큰돈을 버는 것 같지도 않은데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여행 첫날 새벽에 들려서 아침식사만 하고 떠났던 바로 그 아무라(Amura)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는 40분이 흘렀다. 하차 직전 가이드가 바르셀로나에서 잃어버리신 카메라를 찾았답니다.” 하고 말했을 때 우리들은 좌석에서 벌떡 일어서 버스가 떠나갈 듯 기쁨의 환호성을 터뜨렸고, 애써 태연하던 총무의 얼굴빛은 환히 밝아졌다. 극적인 효과를 높여 우리들의 기쁨을 배가(倍加)시키려고 고의로 늦게 알려준 것이 아닐까 의심된다. 동욱이가 명함을 건네주었다. 인편(人便)으로 전달될 모양인데 하루 빨리 받게 되기를 바란다.

 

 

 

La Catedral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인근의 프라도(Prado) 미술관에 도착했다.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8천 점 이상 소장하여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국립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하나이다. 이곳은 스페인 왕실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화가들의 작품이 중점적으로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스페인 예술을 시대 순으로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우리는 고야의 동상 앞에서 단체기념사진을 찍고, 좌측 헤로니모스 건물의 입구를 통과해 다시 비야누에바 건물로 들어가 고야의 문 쪽에 있는 안내데스크로 가서 소형무전기를 지급받았다.

 

 

제일 먼저 만난 작가는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 1599~1660)이다. 세비야 출신으로 1623년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가 되었다. 만년(晩年)의 대작 라스메니나스(시녀들 : Las Meninas)는 바로크 회화의 대표적 걸작이다. 라스메니나스는 명예로운 시녀들이란 뜻으로 작가의 화실을 방문한 펠리페 4세의 딸 5살의 마르가리타와 시녀들을 그린 한 폭의 초상화인데 그림 자체가 마치 거대한 거울과도 같다. 화면 중심에 공주가 초상화 모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두 시녀가 보좌하고 있다. 그 옆에 화가 벨라스케스가 대형 캔버스 앞에서 팔레트를 들고 서 있으며, 전경(前景)에 큰 개와 궁정 난장이들이 있다. 그림이 가득 걸린 어둑한 벽 뒤로 빛이 환한 출구에 한 남자가 서 있으며 국왕부부가 멀리서 이들을 살짝 바라보는 모습이 저 멀리 거울 속에 비치고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특징인 주걱턱을 가진 펠리페 4세의 <기마상 : Horseback>, 아폴로가 그려진 <대장간 : Vulcan's Forge>, <동방박사의 경배 : The Adoration of the Magi>, 그리고 <작은 새와 성가족 : The Holy Family with a Little Bird> 등도 발목을 잡는 작품들이다.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에게 갔다. 아라곤 왕국의 옛 수도 사라고사(Zaragoza) 옆의 펜테토도스라는 곳에서 태어나 1775년부터 궁정에 들어가 일하기 시작하였다. 1799년에는 허약하고 우둔한 카를로스 4세와 영악하고 부도덕한 마리아 루이사 왕비 밑에서 궁정 수석화가가 되었다. 그는 왕족이라 하여 초상화를 더 잘 그려주는 법이 없어서 <카를로스 4세의 가족 : The Family of Charles )에서는 주요 인물들을 흉하고 천박한 모습으로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연작(連作)인 전쟁의 참화 <180852: 마멜루크족의 진격><180853: 수비군의 처형>은 프랑스에 대항해 180852일 마드리드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 이튿날인 53일 단 하루 만에 수많은 국민이 무참히 살해된 참상을 고발함으로써, 나폴레옹 침략의 공포와 비참한 결과에 대한 자신의 반감(反感)을 담은 작품이다. 빈틈없는 세부묘사로 실물 같은 생생한 효과를 창조해냈다. 이 민중봉기로 카를로스 4세의 총애를 받지만 사실은 왕비 마리아 루이사의 정부(情夫)로서 젊은 나이에 재상이 되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던 마누엘 데 고도이가 로마로 망명했다.

 

 

고야의 또 다른 대표작 <옷을 입은 마하 : The Clothed Maja><옷을 벗은 마하 : The Naked Maja >를 보았다. 두 작품 모두 음영(陰影)의 효과가 탁월하고 같은 구도(構圖)에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으나 누드화가 좀 더 선명한 명암대비로 극적효과를 강조했다. 고야는 <옷을 벗은 마하> 때문에 종교재판을 받으면서도 그 모델이 누구인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자식을 먹는 사투르누스> 관람객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사투르누스(Saturnus)는 로마신화의 농사를 돌보는 신으로, 그리스 신화에서의 크로노스(Cronus)와 동일시(同一視)되는 신이다. 어머니인 대지의 신 가이아(Gaea)와 아버지인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us)의 여섯 째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의 사주(使嗾)를 받아 아버지의 거시기를 낫으로 잘라 거세한다. 그는 누이 레아와 결혼하지만 자식들에게 권력을 뺏길까봐 두려운 나머지 자녀 다섯을 낳는 족족 삼켜 권력을 유지한다. 레아는 이런 만행을 견디다 못해 막내아들인 제우스가 태어나자 그를 숨기고 그 대신 커다란 돌을 포대기에 싸서 크로노스로 하여금 삼키게 한다. 여섯 째 제우스는 성장하여 아버지의 시종으로 들어가 몰래 약을 먹여 다섯 형제들을 토해내게 하고 형제들과 힘을 합쳐 아버지를 추방한다.

 

 

 

17세기 유럽의 유명화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작품실로 들어갔다. 루벤스는 독일 태생으로 23세부터 8년간 이탈리아에서 유학생활을 했으며 이후 플랑드르(지금의 벨기에 지방)지역으로 가서 바로크 화풍을 정착시킨 화가이다. 이 시기에 플랑드르 총독 알브레흐트 대공(大公)의 궁정화가로 명성을 쌓았다. 그는 대단한 명암 표현과 생동적 관능적 표현에 능하였는데 사랑의 여신 비너스(Venus)를 섬기는 나체의 <세 여신: The Three Graces>은 특히 주목을 받은 작품으로 당시 여성미의 기준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옆방에 들어가 <동방박사의 경배 : The Adoration of the Magi>를 보고 나왔다.

이명제 가이드의 작품 설명은 여기까지였고 우리들에게 자유시간이 허용됐다. 어딘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은 안호석/주증애 부부, 김장균/김인순 부부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명은 엘 그레코와 무리요의 작품을 찾아보기로 했다.

 

 

프라도 미술관에는 고야의 문, 벨라스케스의 문, 무리요의 문, 이렇게 3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의 문 앞에는 해당 화가의 동상이 입장객을 맞이하듯이 서 있다. 무리요(Murillo, Bartolome Esteban, 1618~1682)는 벨라스케스의 고향이기도 한 세비야에서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고향에서 보내며 주로 수도원을 위해 작업했다. 그는 스페인 바로크 회화의 대표적인 화가로, 주로 성모와 성자들을 생생하게 그렸다.

무리오의 전시실에 들어가서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구경하고 있는데 뒤따라 들어온 일본인 단체관광객들이 어느 작품 앞에 빙 둘러서서 가이드의 해설을 듣는다. 우리는 무심코 지나쳐 왔는데 도대체 그 그림이 무엇이기에 하며 장균이 부부와 함께 그곳으로 되돌아갔다. 소형 화판에다 그렸는데 제목은 <마리아에게 글 읽기를 가르치는 성 안나 : Saint Anna teaching the Virgin to read>이었다. 성모 마리아가 유년시절에 어머니 안나가 마리아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는 상황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리스도의 외할머니가 Saint Anna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귀족의 꿈 : The Patrician's Dream>,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 The Immaculate Conception>와 신약성서를 바탕으로 어린 그리스도와 양을 그린 <선한 목자 : The Good Shepherd >등의 작품을 지나 <성가족 : The Holy Family>과 마주섰다.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와 강아지가 놀고 있는 서민가정의 단란한 생활모습 속에서 무리요의 서민적 성품과 따뜻한 인간성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알칼라 거리와 교차하는 곳에 있는 시벨레스 광장을 지난다. 광장 중앙에는 커다란 원형분수대가 있어 로터리 역할을 하고 있다. 분수대 위에 사자 2마리가 끄는 2륜마차에 앉아있는 하늘과 땅의 여신 시벨레스(Cybeles) 조각상이 아름답고 위엄이 있어 보인다. 시벨레스 여신은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신의 어머니인 레아(Rhea)와 동격(同格)이다.

버스는 마드리드 구시가(舊市街)의 중앙대로(大路)인 그란 비아(Gran Via) 거리를 지나 스페인 광장에 멈추었다. 광장 중앙에 세르반테스 사후 3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기념비가 서 있다. 중앙 계단위에는 석고상같이 하얀 세르반테스가 앉아있고, 그 발치에는 로시난테에 올라탄 돈키호테와 노새에 올라앉은 산초 판사의 청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동상 앞에는 연못이 있고 기념비 뒤에는 분수대가 있는데 주위에 사진촬영하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왕궁 옆을 지나 마요르 광장(Plaza Mayor)으로 갔다. 중세시대에 상인들이 모여 살며 물건을 사고팔던 광장이다. 오늘 이곳에 특별히 시장이 열려 규격화 된 임시점포가 가로 세로 바둑판처럼 질서 정연하게 세워져 있다. 중앙의 시계탑이 있는 4층 아파트형 건물은 시청사가 사용하고 있는데 발코니와 발코니 사이의 수많은 벽면이 모두 파스텔 색채의 대형 전신인물(全身人物) 벽화(壁畵)로 치장되어 시선을 끌고 있다. 17세기에 투우, 승마, 종교재판, 화형식 등이 이곳에서 열렸으며 광장 한가운데에는 이 광장을 짓도록 명령을 내린 펠리페 3세의 기마상(騎馬像)이 서 있다.

 

 

 

 

 

 

 

 

 

 

 

 

 

 

마드리드 중심가에 위치한 푸에르타 델 솔 광장으로 가는 길에 도로변 벤치에 앉은 게이(gay)들의 풍기문란한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광장 한 가운데는 파란 천막이 공중에 걸려있고 그 아래에는 몇 개의 여행용 텐트가 세워져 있다. 현수막과 피켓이 여기저기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농성을 벌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부의 긴축정책에 반발해 최근 대학생과 노동자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곳에서 열렸었는데, 현재 스페인의 실업률은 20%가 넘고 30세 미만 청년실업률은 45%에 달한다고 한다.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태양의 문이라는 뜻으로 16세기까지 태양을 새긴 성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성문 대신에 시계탑이 있는 시 정부청사가 있다. 청사 앞의 보도에는 스페인 각지로 이어지는 9개의 국도 기점을 나타내는 포인트제로(0km) 동판이 있다. 이곳을 밟으면 마드리드에 다시 오게 된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판을 밟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부부도 얼른 뛰어가서 밟고 돌아왔다.

우리들은 가이드가 안내해주는 대형 할인매장에 가게 되었는데, 여행 온 이후 처음으로 갖게 된 쇼핑이라서 그런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스페인은 중국 다음으로 음식의 종류가 많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여러 문화가 뒤섞여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여행지에서 마지막 매식(買食)이니 만큼 한 번쯤 한식으로 하는 것도 좋겠다싶어 가이드가 안내하는 가야금이란 한식당으로 갔다. 지하의 조용한 홀에 자리 잡고 앉아 추천해 주는 대로 음식을 주문했더니 음식이 푸짐하게 나오는데, 쌀밥에 구수한 된장국, 잡채, 모둠나물, 오징어볶음, 돼지양념 불고기 등 산해진미(山海珍味)가 진수성찬(珍羞盛饌)이다. 적어도 일주일 이상 한식 구경을 못한 우리들 입에는 그렇게 느껴진다. 회원들 중 최 후순위로 밀려있던 윤수에게도 마침내 와인을 돌리는 기회가 왔고, 카메라 찾게 된 것을 감사하는 동욱이는 구색을 맞추어 소주까지 마시게 해주니 모두에게 행복한 여행에 행복한 식사가 되었다.

 

 

 

 

 

밤이 이슥하여 호텔 로비에 모인 우리들은 <체리 빨리 많이 먹기> 최종 완결편을 만들고 객실로 올라가 잠시 눈을 부친다. 530분 모닝콜에 이어 각 방으로 포장 배달된 콘티넨탈식() 아침식사를 서둘러 끝내고 공항으로 나갔다. 배재836020 명 회원들의 붉게 탄 얼굴마다 건강미와 행복감이 넘쳐흘렀다. 이명제 가이드의 환송을 받고 국제공항 지정된 게이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드리드 공항을 이륙한 KE926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기착(寄着)하였고 우리들은 통과여객(Transit Passenger)으로서 특정구역에 가서 1시간가량 대기해야 했다. 다시 10시간을 비행하는 항공기에서 기내식을 먹은 후, 한국에 돌아가 조속한 시차 재적응을 위해 잠들을 청한다. 수면 유도제를 먹은 사람도 있다. 며칠간 정신없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여정(旅程)과 동선(動線)을 카메라에 담고 노트에 메모하느라 쌓인 피로가 일시에 엄습한다. 그러나 눈은 아픈데 잠이 쉽사리 들지 않는다. 창밖은 어둠속에 묻혀있고, 탑승객들 대부분 곤히 잠들어 있다. 꿈속에서 돈키호테나 콜럼버스를 만나고 있는 사람도 있겠고 투우나 플라멩코를 구경하고 있는 사람도 있으리라. 각 지역을 돌며 두 눈에 담아 머릿속에 차곡차곡 재어놓은 무수한 장면들이 파노라마같이 펼쳐진다. 옆자리 안식구도 간간이 몸을 뒤척인다. 웬일일까? 갑자기 마리아와 조오단이 주고받던 대사가 떠오른다.

 

" Kiss me a little."

" I do not know how."

" Just kiss me."

" Where do the noses go? I always wondered where the noses would go."

" Look, turn thy head."

 

어느 승객의 창문 올리는 소리에 고개 돌려 창밖을 내다보니 어느 새 여명이 밝아온다. 신비감마저 불러일으키는 이색적인 문화를 가진, 그래서 일생에 한 번은 꼭 방문할 가치가 있는 스페인/포르투갈에 대한 우리들의 여정(旅程)도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이번 여행으로 우리들의 마음의 영토는 더욱 넓어지고, 회원들 간의 우정과, 부부간의 사랑도 더욱 깊어질 것이며, 아울러 회원 모두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래오래 기억되고 이야기 될 것이다.

 

이번 여행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다 함께 애쓴 회원 여러분!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글쓴이  임정호

 

“HOLA" 2011. 7. 4.

 

배재8360 안호석/주증애, 이규봉/고순선, 한동욱/김정수, 최병호/이은순, 조성준/이영주, 김장균/김인순, 이동훈/윤윤희, 김윤수/손 경, 신연호/정용하, 임정호/이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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