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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소한 일상을 담다.
♣... 2011년 스페인, 포르투칼

포르투칼 - 리스본/까보다 로카

by 들국화/유채 2020. 9. 18.

615() 여행의 다섯째 날 - 리스본/까보다 로카

 

동틀 무렵 호텔 앞에 모여 해변으로 갔다. 썰물이라 바닷물은 나가고 있는 중이었으며 조수간만의 차는 최고 2.5m이라고 한다.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방파제 끝까지 걸어 나가 좌우 해안과 대서양 망망대해를 바라본다. 오른쪽에 위치한 그리 멀지않은 항구로 대형 크루즈 에클립스 호(Eclipse)가 서서히 입항하는 모습이 보인다. 해변 명사십리(明沙十里)에는 가늘고 긴 건초줄기로 엮어 세운 파라솔들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마치 과거 우리네 초가지붕 위에 마른 짚으로 덮어씌운 이엉과 비슷하다. 아침체조를 하고 해안도로를 따라 항구 방향으로 한참을 걷다가 되돌아와 식사하고 짐을 꾸려 호텔을 나섰다.

 

 

 

 

 

 

 

 

 

 

까보다 로카를 가는 도중에 현지가이드 정현주씨가 거주하는 까스까이쉬(Cascais)에 들렀다. 리스본에서 약 25km 떨어져 있으며 항구와 해변을 낀 작은 마을이나 리조트와 호텔 등이 밀집한 고급휴양지이다. 세기의 사랑 심프슨 부인과 에드워드8세가 묵었다는 Hotel Atlantico 옆을 지나 버스에서 내리자 길거리에 열린 벼룩시장에는 다양한 중고생활용품과 100년도 넘었을 골동품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마을의 집들을 보면, 지붕은 황토를, 벽은 파스텔을 많이 쓰는데, 기온이 높아 친환경적 건축재를 사용하는 것이란다. 정원과 건물이 무지무지 아름다운 2층 민박집이 나타나자 카메라맨은 귀부인들을 집합시키더니 배경 좋고 구도 좋고 인물 좋은 고품격의 단체사진을 찍는다. 과일가게 지나치며 체리와 망고가 눈에 띄자 주증애 여사는 그 참을 수 없는 유혹에 회원들에게 사 주려고 봉지마다 바리바리 담는다. 아기자기한 마을의 거리와 골목이 온통 채색타일로 포장되었고 다양하게 무늬가 들어있어 일행들은 다리가 피곤한 줄 모르고 한참을 무작정 걸었다.

 

 

 

 

 

 

 

 

 

 

 

 

 

 

리스본으로 다시 돌아온 우리는 시의 서쪽 벨렘지구에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갔다. 포르투갈의 왕 마누엘 1세가 그의 선조이며 중세기 포르투갈 대항해시대의 선구자(先驅者)인 엔리케 왕을 기리기 위하여 착공한 수도원이다. 건물의 길이가 약 300m에 이르는 웅장하고 화려한 마누엘 양식의 대표작으로 포르투갈 전성기인 1502년에 짓기 시작하여 약 170년이 걸려서 완공된 석회암 건축물로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으로 평가 받는다. 마누엘 양식이란 마누엘 1세의 이름에서 비롯된 포르투갈 특유의 화려한 건축양식으로, 당시 활발했던 해상 무역이 건축에도 영향을 주어 바다와 연관된 것들이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리스본으로 다시 돌아온 우리는 시의 서쪽 벨렘지구에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갔다. 포르투갈의 왕 마누엘 1세가 그의 선조이며 중세기 포르투갈 대항해시대의 선구자(先驅者)인 엔리케 왕을 기리기 위하여 착공한 수도원이다. 건물의 길이가 약 300m에 이르는 웅장하고 화려한 마누엘 양식의 대표작으로 포르투갈 전성기인 1502년에 짓기 시작하여 약 170년이 걸려서 완공된 석회암 건축물로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으로 평가 받는다. 마누엘 양식이란 마누엘 1세의 이름에서 비롯된 포르투갈 특유의 화려한 건축양식으로, 당시 활발했던 해상 무역이 건축에도 영향을 주어 바다와 연관된 것들이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수도원의 남문에는 마누엘 양식을 대표하는 성인(聖人)들 조각상 24개가 세워져 있는데, 건물 외벽에서 산호와 조개모양의 석조 몰딩이나 밧줄모양의 돌조각돌림띠를 볼 수 있다. 성 마리아 성당의 파사드(전면부) 가운데에는 마누엘 1세와 왕비 마리아, 성 제로니무스, 세례요한 등의 조각상이 있고, 수도원 왕실묘지에는 마누엘 1세와 왕비의 석관이 있으며, 특히 야자수 형상을 하고 있는 수도원 내부의 기둥과 천장이 매우 인상적이다.

 

 

 

 

 

 

 

 

 

 

 

 

 

 

 

 

 

 

수도원을 나오자 가이드는 빠스테이쉬 드 벨렝’(Pasteis de Belem)이라는 제빵점으로 안내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서 빵제조실을 지나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제과점 치고 엄청난 규모의 면적이다. 제일 안쪽 넓은 홀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앉자 장균이는 자기가 계산을 할 테니 주문을 하란다. 에스프레소와 함께 먹는 노릇노릇하게 구워낸 빠스테이쉬 드 나따(Pasteis de Nata)라는 계란빵은 달콤하고 부드러우며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이 제빵점은 1837년에 오픈한 계란빵의 원조(元祖) 가게로 여행객뿐만 아니라 현지 주민에게도 대단한 인기가 있다고 한다.

 

근처에 있는 벨렘탑으로 이동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입장할 때부터 동행하던 남성 현지관광안내원과 김현주 인솔자 및 우리 일행 중 2명은 잔디밭에 남고 나머지 일행을 정현주 가이드가 인솔하였다. 5층 구조의 벨렘탑은 1515년부터 1521년까지 마누엘 1세가 항구를 감시하고자 테주 강변에 세운 군대 요새(要塞)로서 당시 해외로 드나들던 배가 통관절차를 밟기도 하였다. 건물은 본래 강 중앙에 세워졌으나 지형이 바뀌어 지금은 물가에 서 있다.

 

관람 전 엉뚱한 해프닝이 벌어졌다. 현지관광안내원이 함께 입장하였다면 묵인되었을 상황에서 가이드가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의 티켓을 구입하여 입장하려던 것이 화근이 되어 문화재관리청 소속 젊은이와 가이드 간에 언쟁이 발생하였고, 사태는 급속히 악화되어 뒤늦게 현지관광안내원과 경찰이 들어와서야 수습이 되었다. 120계단을 올라 5층 망루에 서서 동쪽을 바라보니 넓은 테주 강을 가로지르는 현수교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흡사하다. 스페인 중부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이 강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긴 강(1,008km)으로 인근 하류에 강폭이 14km가 되는 곳도 있어 마치 바다와 같아 보인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실업자 고용정책의 일환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단체할인을 받아 유료 관광명소를 입장할 경우에는 자격증을 소지한 내국인(內國人) 관광안내원을 대동하여 설명을 직접 또는 통역을 통해 듣고 응분의 수고비를 지불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 일본, 중국 등의 외국인 단체 여행객들의 경우 대부분 현지에 나가 사는 자국민(自國民) 가이드들이 직접 설명을 해줌으로써 현지 내국인 관광안내원들은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보수를 받고 있다.

 

 

인근 강변에 있는 발견기념비로 갔다. 포르투갈이 해양국가로의 기초를 세우는데 공헌한 엔리케(Henrique:1394~1460) 항해왕의 서거 5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범선형태의 기념비이다. 엔리케 왕의 아버지는 스페인 민병대장 출신으로 이슬람교도를 몰아내고 새로운 국가 포르투갈을 세운 주앙 1(Joaõ )이다. 기념비의 좌우 측면에는 엔리케 왕을 선두로 각각 16명씩의 조각상이 있는데 왼쪽에는 마젤란, 바스코 다 가마, 콜럼버스 등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 인물들이고, 오른쪽에는 해양활동을 수행했던 기사와 천문학자, 선원과 선교사 등과 엔리케 왕의 최고 후원자였던 어머니와 그의 동생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리스본의 중심지인 로시우 광장을 지나간다. 광장 한 복판에는 화려한 분수대가 물을 뿜고 있고 브라질의 초대 왕이었던 동 페드로 4세의 동상이 보이는데 바닥은 온통 물결무늬이다. 주변 도로에는 버스와 트램(노면전차)의 왕래가 많은데 120년 되었다는 골동품 전차도 운행되고 있다. 금은방이 즐비한 금의 거리, 은의 거리를 지나 리스본의 샹젤리제 거리라고 불리는 리베르다드 거리로 들어섰다. 고급상가, 금융회사, 호텔 등이 모여 있는 차분한 분위기이다. 90m의 일직선을 이룬 거리를 1.6km가량 북쪽으로 가니 리베르다드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퐁발(Pomball) 후작 광장이 있다. 중앙에 있는 그의 동상이 사자 위에 손을 얹고 리스본 시내와 테주 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퐁발은 1750년부터 27년간 포르투갈의 수상을 지냈던 사람으로 1755년 대지진 이후 폐허가 된 리스본을 도시계획에 의해 새롭게 재건축하고 정치, 경제, 교육부문에 개혁을 하여 포르투갈 국민들에게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우리는 드디어 포르투갈의 최종 관광이 될 에두아르도 7(Eduardo )공원 초입으로 올라가 버스에서 내렸다. 에두아르도 7세는 영국의 왕 에드워드 7(Edward )를 말하는데 1902년 포르투갈을 방문하여 양국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여 리스본 현 위치에 공원을 만들었다. 맨 위쪽에는 좌우 양쪽 가에 각각 쌍둥이 기념비들이 있고 그 사이에 있는 인공 연못 가운데에 석조 조형물이 있으며 그 뒤로는 포르투갈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다. 아래쪽으로 경사져 내려가는 U자형의 넓은 공간에는 잔디밭이 시원하게 펼쳐지는데 그 위에는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의 헤네랄리페 정원에서 본 것처럼 회양목을 기하학적 문양으로 반듯하게 심어 매우 인상적이다. 그것이 끝나는 지점에 퐁발 후작 동상이 보인다. 공원과 시내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공원 좌측과 우측에는 각각 퐁발 후작 광장까지 이어지는 약 20m 폭의 대형 산책로가 있다. 그 넓은 바닥 전체가 4~5cm크기의 재활용 조각타일로 포장되었고, 울창한 가로수들이 널따란 터널 숲을 형성하고 있다. 자유시간에 벤치주위에 앉거니 서거니 모여 수밀도(水蜜桃)같이 살과 물이 많고 단맛이 나는 망고를 게걸스레 먹어치웠다.

 

 

 

 

 

 

 

 

 

 

 

한국 식당은 없다고 했으므로 <동해>라는 중국식당에 갔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이영주 여사의 여동생 부부가 일행들과 함께 들어와 자매와 동서가 극적으로 상봉하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중국에 가서 근무하고 있는 제부(弟夫)가 한국에 들어와서 지인(知人) 부부들과 단체여행을 온 모양이다. 문제는 양가(兩家) 모두 상대방이 해외 여행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매와 동서지간이 해외 특정지에서 예고도 없이 만날 확률은 도대체 얼마가 될까? 석식 후 리스본 포르텔라(Portela) 공항으로 가서 스페인 바르셀로나 행 항공기에 탑승하였다. “지금까지 포르투갈에 11년을 살았지만 100년을 이곳에 산다 해도 저는 한국인입니다.” 라고 한 정현주 가이드의 말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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