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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소한 일상을 담다.
♣... 2011년 스페인, 포르투칼

스페인 - 세비야/리스본

by 들국화/유채 2020. 9. 18.

614() 여행의 넷째 날 - 세비야/리스본

 

세비야(Sevilla)는 도시 중심부에 과달키비르 강이 흐르고 있어 로마시대부터 번영하였고 서고트 왕국시대 (411~711)에는 수도였던 시기도 있다. 711년에 침입한 무어인(아랍족)의 지배로 이슬람 문화권에 들어가면서 한층 더 발전하였는데 세비야의 상징인 히랄다 탑이 세워진 것은 12세기말이다. 카스티야 왕 페르난도 3세는 1248년 세비야를 탈환하였고,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 이후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여행거점이 되었으며, 마젤란이 1519년 이곳에서 세계일주 여행을 출발한 곳이기도 하다.

오늘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양끝에 2개의 탑이 서 있는 커다란 반원형 건물에 둘러싸인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nia)이다. 건물은 1929년 이베로 아메리카 박람회 개최에 맞춰 지어진 것인데 건물 정면 아래 부분은 58개의 칸으로 구획이 나뉘어 있고, 건물의 좌측에서 우측 방향으로 각 칸의 벽면마다 알파벳 순서로 스페인 도시의 지도와 역사적 사건들을 아름다운 채색타일 모자이크로 그려놓았다. 그리고 벽 위의 1층 난간에는 돌기둥을 116(2X 58) 세워 놓았는데 2개씩의 돌기둥으로 받쳐진 아치와 아치 사이 벽에는 각 도시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의 얼굴 조각상이 돌출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왼쪽 맨 처음 구획에는 Alava 도시와 거기서 태어난 세네카(Seneca)가 조합을 이루고 있고, 건물 맨 우측의 58번째 칸에는 Zaragza 도시와 그 곳 출신 소로야(Sorolla)가 세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광장 중앙에는 원형분수대가 있고 건물과 분수대 사이에 반원형 인공운하를 만들었는데 그 위에는 채색 타일로 치장한 아치형 구름다리 2개가 놓여 있어 사진발이 잘 받는다.

 

 

 

 

 

 

 

 

 

 

 

 

 

 

 

 

 

 

 

 

 

 

 

 

 

 

 

 

 

세비야는 스페인에서 가장 더운 지역 중의 하나로 6월 중순인 오늘의 예상최고기온이 섭씨 38도라고 하니 오늘 오후에 더위의 진면목을 보여주려는가 보다. 맞은편에 있는 마리아 루이사 공원에 삼삼오오로 나뉘어 들어갔다. 입구에 공원을 만든 세바스찬 엘카노 동상과 석조기념물이 있다. 1893년에 산텔모 궁전의 정원 절반을 세비야 시에 기증한 마리아 루이사(Maria Luisa) 왕비의 이름을 따서 만든 공원이다. 종려나무와 플라타너스 나무들로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쾌적하고 넓은 휴식공간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눈에 띠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500주년 기념탑에 당도하니 아래 부분에는 콜럼버스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고, 가운데 부분 2개의 돌기둥에는 산타마리아호의 모형이 있으며, 꼭대기에는 사자조각상이 있다. 무리요(Murillo, 1617~1682)가 살았다는 좁고 아담한 골목의 유대인 마을 상점가에서 잠시 쉬다가 예쁜 분수와 오래된 나무들이 인상적인 무리요 정원을 휘익 둘러보고 세비야 대성당으로 길을 재촉했다.

 

 

 

 

 

 

 

 

 

세비야 대성당 건물 서쪽 중앙정문 입구의 승천의 문은 평상시에는 닫혀 있다. 고개 들어 98m 높이의 탑을 쳐다보니 정상에 청동 여신상이 보인다. 바람이 불면 이 여신상이 빙글빙글 돌기 때문에 풍향을 가리키는 닭이란 뜻으로 히랄다(Giralda)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건물주위를 왼쪽으로 거의 한 바퀴 돌아 매표소에 도착하니 도로변에 손님을 기다리는 관광마차들이 즐비하다. 말은 옆을 못 보도록 눈가리개를 해서 그런지 행동이 민첩하지 못하다. 현지 관광안내원도 도착했고 11시 정각이 되어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영국의 성 바오로 성당에 이어 세계 3위의 산타 마리아 성당에 입장하였다.

 

격자(格子)로 에워싸인 중앙제단의 장식벽에는 성서에 근거한 수많은 장면들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성체현시대의 높이는 9m나 되고 중앙제단에 쓰인 금의 양은 2톤에 달하며 오르간은 파이프가 7천개나 된다고 하니, 앞서 본 톨레도 대성당은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주위의 소예배실과 성구실 등에는 고야, 무리요, 발데스 레알 등이 제작한 수많은 명화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남쪽의 산 크리스토발 문() 근처에는 스페인 국토회복운동(레콘키스타)을 주도한,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 4개 왕국들을 상징하는 4개 거인상(巨人像)이 콜럼버스의 관을 어깨에 올려 떠받치고 있다.

 

산타 마리아 성당은 길이 126.18m, 82.60m 높이 30.48m의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임을 확인한다고 적힌 기네스북 기록(Guinnes Book of Records) 인증서를 구경하였다. 정사각형으로 된 탑의 전망대까지 오르는 내부통로는 계단이 아니라 슬로프(경사면) 형태로 되어있는데, 이는 왕이 말 잔등 위에 탄 채로 전망대에 오를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서른아홉 바퀴를 돌며 올라간 종루(鐘樓)에는 크고 작은 수십 개의 종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주위 사방을 조망하고 성당건물 밖으로 나와 외벽을 끼고 대로변을 걷는데, 백발노인과 젊은 남자가 아코디언을 메고 계단에 앉아 비둘기란 뜻의 스페인 민요 <라파로마 : La Paloma>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젊어서는 번역곡을 수시로 흥얼거렸고 나이 들어서는 나나무스쿠리의 노래를 즐겨 들었었다. 대열에서 잠시 낙오(落伍)되어 귀 기울여 듣는다.

 

스페인의 영웅 엘 시드의 동상 옆을 지나 황금의 탑으로 갔다. 이슬람교도 무어인(moor)에 의하여 1220년에 지어진 건축물로 과달키비르 강을 내려다보며 세비아를 지키던 정12각형의 해상검문소이다. 옛날에는 탑의 상부가 황금색 타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에 황금의 탑이라고 불리었다. 건설 당시에 강 건너에도 8각형의 은의 탑이 있어 두 탑 사이에 굵은 쇠사슬을 매어 놓고 과달키비르 강으로의 적선의 침입을 막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마젤란이 세계일주 항해를 떠났기 때문에 해양도시 세비야의 영화(榮華)를 말해주는 해양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날씨가 너무 더워 보도위에 키 크고 잎이 무성한 올리브나무 그늘 아래로 모여들었다. 마침 좋은 기회다 싶어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잎은 4~5cm 크기인데 가죽질에다 창끝 모양이고 앞면은 암녹색이나 뒷면은 은백색이다. 이미 반쯤 자란 열매들이 다닥다닥 달려있다. 구약성서에서 대홍수가 있은 후 육지를 찾고자 노아가 보낸 비둘기가 물고 돌아왔다는 것이 바로 올리브 나무 가지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제 국경너머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이동해야하고 따라서 나흘간 우리들과 침식을 같이 하며 관광안내를 해준 최재림 현지가이드의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그런가 하면,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는 말도 있다.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리스본까지 갔다가 스페인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버스 안에 현지가이드가 앉았던 좌석은 이규봉 단장 몫이 되었다. 버스안의 분위기가 전면적으로 쇄신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세비야에서 포르투갈 국경까지는 약 135km가 된다. 출발 전 산타모(San Tamo) 음식점에서 고급 스페인요리에 와인과 소주를 함께 마신 탓인지 남자 회원들은 대부분 축 늘어져 있다. 가도 가도 올리브나무숲과 해바라기들판이 끝없이 이어진다. 고순선 여사가 공들여 구워온 인기가요 CD 8장은 아무래도 다 듣지 못하고 돌아갈 것 같다. 버스도 견디기 힘이 드는지 달구어진 도로위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달려간다. 규봉이가 출국 전 3일간 고심하며 엄선발췌(嚴選拔萃)하였다는 유머모음집을 읽어주며 난센스퀴즈를 내고, 노래도 시키는 동안 우리는 검문검색이 없는 국경을 통과하였고 또다시 8백리 길을 달려 마침내 리스본에 무사히 진입하였다.

포르투갈은 기원전 750년경 켈트족이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하여 민족의 원조(元祖)가 된 국가이다. 기원전 2세기경에 로마제국에 편입되었고, 711년 무어족의 침공을 받을 때까지 라틴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그 후 1249년 무어족을 완전 축출하면서 남부로 영토를 확장하여 현재의 포르투갈 국경의 기초를 형성했다. 면적은 우리나라 크기이지만 과거 14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해양강국으로 대서양의 패권을 잡고 인도 ,마카오, 필리핀, 브라질 등을 식민지로 삼아 세계 최대의 영토를 차지했던 나라이다. 정치형태는 대통령중심제를 가미(加味)한 내각책임제이고, 종교는 대부분 로마가톨릭이며, 지중해성기후지대로 따뜻하나 5~8월은 비가오지 않는 건기(乾期)이고 9~4월은 우기(雨期)가 된다.

리스본 초입에서 현지가이드인 정현주씨가 버스에 올랐다. 11년간 포르투갈에 살고 있다는 40대 초반 가량의 인텔리 독신녀이다.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유럽순방길에 올랐던 박근혜씨 일행이 지난 52일 리스본을 방문했을 당시 현지안내원 중에 한 명이었다고 한다. 인솔자 미스 김과 이름이 같아 싸잡아 쌍현주로 통한다. 버스는 리스본 항구에 접한 테주 강(Rio Tejo)을 가로지르는 2,278m의 현수교(懸垂橋)를 넘어 시내로 들어갔다. 리스본에는 한국식당이 없다고 하여 Valenciana 스페인레스토랑에 가서 와인을 곁들여 저녁식사를 하고 해변에 있는 Costa da Caparica 호텔에 들어가 여장을 풀었다.

일몰(日沒)전인 10시경에 해안가 기다란 포장도로변을 따라 일정간격에 일렬횡대로 지어놓은 박스형태의 레스토랑 중 한 곳에 들어갔다. 식탁이 놓인 식당과 베란다에 예닐곱 명의 손님이 보인다. 긴 테이블과 소파들만 놓인 별실에 식당의자를 옮겨 22명의 자리를 만들고 어둠이 내려 깊어가는 밤에 처음으로 생맥주를 돌렸다. 장미꽃을 파는 남자가 떠날 줄 모르고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성준이가 부인에게 2유로짜리 장미 한송이를 무릎 꿇고 자진 봉헌(奉獻)하자, 항상 남편의 건강을 챙기고 모임 있을 때마다 맛있는 홈메이드 쿠키로 우리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이은순 여사도 병호로부터 장미화를 받았다. 동훈이는 자녀 다산(多産)과 조기 짝맺어주기로 이미 10명의 대가족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애교만점 윤윤희 여사에게 장미 증정에 이어 러브 샷을 제안했고, 최고의 원앙부부로 자타가 인정하는 신연호/정용하 부부도 시범을 보였다. 아들 딸 1명씩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부인에게 무릎꿇어본 적이 없노라고 위증(僞證)을 하던 윤수도 끝내는 손 경 여사에게 두 무릎 꿇고 헌화하였다.

손 경 여사에게 노래 한곡을 부탁하였더니 과일 속의 씨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과일 겉모양을 보고서는 알 수 없듯이 사람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는 그 사람의 참모습을 알 수 없다는 철학적인 말로 대신하고 자리에 앉았다. 윤수가 주야장천(晝夜長川) 애창하는 팝송, 탐존스의 를 듣고 감동 먹은 술집주인, 식사손님들 그리고 발걸음 멈추고 귀 기울이던 행인들의 앙코르박수에 이번에는 로써 자신이 최고의 가객(歌客)임을 재차 유감없이 증명해 보인다. 이규봉/고순선 부부 큰 며느리의 박사학위논문통과 축하에 대한 답례로 열린 리스본 해변파티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밤은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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