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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소한 일상을 담다.
♣... 2011년 스페인, 포르투칼

스페인 - 코르도바/그라나다

by 들국화/유채 2020. 9. 15.

6월12일(일) 여행의 둘째 날 - 코르도바/그라나다

메스키타란 스페인어로 모스크(Mosque : 이슬람교사원)이라는 의미이며, 남북 180m 동서 130m의 거대한 규모이다. 이 메스키타는 780년에 비지고트(Visigoth) 왕국의 교회가 있던 자리에 건립되어 그 후 3차례에 걸친 확장공사로 현재의 규모에 이르게 되었다. 페르난도 대왕이 코르도바를 점령했을 때 메스키타의 일부를 허물었고, 이곳에 다시 르네상스 양식의 성당을 지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동거(同居)하고 있는 사원이 되었다.

우리는 종려의 문(Puerta de las Palmas)을 통해 모스크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맨 처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즐비하게 서 있는 적백(赤白) 문양의 아치형 둥근 기둥들이다. 하중(荷重)을 분산시키고 천장을 더욱 높게 하기 위해 적색 벽돌과 백색 벽돌을 교대로 짜 맞추어 2층 아치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기둥은 물경(勿驚) 850개나 되며, 결국은 이것들이 거대한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비지고트족의 성 빈센트 교회(San Vincente Basilica)로 쓰였던 옛터 공간 일부를 입구 근처 지하에 발굴해 전시하고 있다.

앞으로 곧장 들어가면 가장 안쪽에 이슬람교 사원의 제단인 미흐라브(Mihrab)가 있는데, 정면과 측면, 천장에 이르기까지 정밀하게 조각된 장식이 압권이다. 미흐라브는 신도들에게 정확한 메카의 방향을 가리켜주어 그 방향으로 기도드릴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한다. 이슬람교 교리상 살아있는 것을 숭배하지 못하므로 회당 안에 형상을 지닌 조각물은 하나도 볼 수 없다. 건물 바닥 곳곳에 국왕이나 귀족들의 무덤이 있음을 알리는 묘비도 있다.

건물 중앙에는 Latin Cross (세로대의 밑 부분이긴 보통의 십자가) 모양으로 디자인을 한 카테드랄(성당)이 있다. 1523년에 성직자들이 당시의 왕 카를로스 5세를 설득하여 9m 높이의 천장을 뜯어내고 24m 높이의 성당을 지으면서, 이슬람교식 구조양식 안에 고딕(Gothic)과 르네상스(Renaissance) 그리고 바로크(Baroque) 양식을 독창적으로 통합시킨 것이다. 완공 후에 왕은 ‘어디에도 없는 것을 부수고, 어디에나 있는 것을 지었다’며 한탄했다고 하나,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 양식이 섞여 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건물’이 탄생한 것이다.

 

 

코르도바(Cordoba)는 기원전 로마식민지 시절부터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심지였으며 특히 로마황제 네로의 스승이자 철학자요 또한 극작가였던 세네카(Seneca : B.C.4~A.D.65)가 태어난 곳이다. 무슬림들이 711년에 침입한 후에는 유럽과 북아프리카 이슬람 왕국의 중심지로 크게 발전하였다. 그들은 과달키비르 강에 로마인들이 세웠던 다리를 정비하고 알카사르 성을 지었으며 알라신의 꿈을 펼치고자 메스키타(Mezquita : 이슬람사원)를 건설했다. 그러나 15세기말부터 기독교인들이 국토회복운동을 벌여 이슬람인과 유대인들을 추방하면서 코르도바는 급격히 쇠락했다. 현재 인구는 약30만 명 정도에 머무르고 있지만 이슬람과 유대교의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플라멩코를 보기 위해서는 타블라오(Tablao)로 가는 것이 좋다. 타블라오란 ‘판자를 깔다’라는 의미의 스페인어에서 나온 말로, 널빤지로 만든 무대를 갖춘 극장식 레스토랑이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업소가 위치한 지역 이름을 따서 1971년에 개업한 ALBAYZIN(알바이신)으로 집시의 전통적인 구조를 갖춘 흰색의 2층 건물이다. 공연 무대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가니 한쪽 편에 장방형 타블라오 무대가 있고 그 정면과 좌우 합해서 100석 정도의 의자가 놓여있는데 우리는 무대 정면 맨 앞자리를 잡았고 우리 뒷자리와 무대 좌측에는 또 다른 한국인들이 앉고, 우측의 50석 가량 되는 좌석은 모두 일본 관광객으로 채워졌다. 관객에게는 음료 1잔씩 제공되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무대 뒤편에는 남자 4명이 올라와 가운데에 오보에 연주자와 기타 연주자가 의자에 앉았으며 칸테를 부르거나 손뼉을 치는 남자 두 명은 좌우에 1명씩 섰는데 그 중 젊은 남자는 캐스터네츠를 들고 있었다. 화려한 의상의 중년 여성 3명이 동시에 등장하여 그들 앞에 놓인 의자에 앉더니 교대해 가며 남자들의 노래와 악기연주 및 박수에 장단을 맞추어 자신도 손뼉치고 구두소리내고 간혹 손바닥으로 자기 몸을 때리며 춤을 추었다. 세 여성 무용수들의 공통점은 무척 인상을 써서 양미간에 주름이 깊게 져있다는 것이다. 삶의 무게와 그로 인한 상실과 절망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 우수한 댄서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그녀들이 한 맺힌 표정으로 어찌나 정열적이고 혼신을 다해 춤을 추는지 우리들은 즐거우면서도 때로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3인조 여성 그룹이 퇴장하고 젊은 여성 무용수가 나왔다 들어갔으며 이어서 젊고 훤칠한 남자 댄서가 등장하였다. 크고 다양한 동작으로 힘차고 절도 있게 때로는 부드럽고 느릿하게 혼신을 다하여 춤을 추는 모습과 얼굴 표정에서 혹시 각성제나 마약을 먹은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기조차 했지만 플라멩코의 진수(眞髓)를 보는 듯 했다. 그가 처음에 출연했던 태생이 집시 같아 보이는 중년여성과 짝을 이루어 춤을 출 때 장내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희한한 음색의 육성으로 칸테를 부르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의 굵고 쉬고 갈라진 소리, 가슴이 찢어질 듯 감정이 실린 구성진 소리는 공연이 끝난 후에도 길게 여운을 남긴다. 정용하 여사는 세 중년여성 무용수가 10년 전 방문해서 관람했을 때와 동일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의 안식구는 3년 전 터키에서 관람했을 때 보다는 공연 수준이 약간 처지는 것 같다고 말하지만 아마도 나와는 달리 두 번째 관람이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북동쪽의 문을 통과하여 메스키타(Mezquita) 경내로 들어섰다. 넓은 무슬림의 정원은 사원 개축당시 리모델링된 것이다. 기존의 종려나무들은 오렌지 나무로 교체되어 현재의 이름인 오렌지의 정원(Patio de los Naranjos)로 바뀌었다. 지붕과 한쪽 벽만이 있는 "ㄷ" 자형 낭하(廊下)의 벽에는 과거 국토회복운동 이후 본 건물을 부수고 교회로 개조할 때 뜯어내었던 엄청난 분량의 석가래, 기둥 따위의 나무자재(木資材)들을 매달아 놓았다.

 

 

 

 

 

 

 

 

 

코르도바 시내에 들어와 중국음식점 중국성(中國城)에 들려 따뜻한 재스민 차를 마시고, 찰기는 없지만 안남미 쌀밥에 다양한 청요리로 배불리 먹은 후 관광에 들어갔다. 메스키타 건물 옆 광장에 우뚝 선 세네카 동상 앞에 가서 방문신고를 마친 우리는 메스키타 북측지역 후데리아(Juderia)라는 유대인 마을로 들어갔다. 옛날 유대인들은 코르도바 칼리프 제국의 경제를 지배하고 제국의 두터운 신뢰를 받으며 이 지역에 살았다. 하지만 이슬람제국이 멸망한 이후 추방령에 따라 이 마을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려 지금은 유대인이 없는 유대인거리가 되었다. 골목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거리의 풍경에 반해 버렸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하얀색 집집마다 출입구 안쪽에 다양한 상품을 진열해 놓고 손님을 맞이한다. 벽면에 'Sinagoga' 라고 찍힌 아크릴 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이 있어 대문 안을 들여다보니 유대인 교회였다. 이 '시나고가'는 코르도바에 1개와 톨레도에 2개, 총 3개만이 스페인에 현존(現存)하고 있다고 한다.

 

 

 

 

 

 

 

 

 

 

 

 

 

 

 

 

 

 

 

Abades Nevada Palace 호텔에 들어가 짐을 풀고 자유시간을 가진 다음, 저녁식사 하고 느지막해서 알바이신(Albayzin) 언덕으로 플라멩코(Flamenco)를 구경하러 올라갔다.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방랑생활을 하던 집시(gypsy)들은 15세기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정착하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는데 그 상징이 플라멩코였다. 여기서 집시(Gypsy)라는 말은 영국인들이 집시를 이집트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온 이집트인(Egyptian)으로 잘못 알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초기에는 생활 속의 애환과 사랑 등 일상적인 것을 주제로 노래하며 손뼉 치는 것이 주요 연주수단이었으나 이것이 발전하여 지금은 플라멩코에 빼놓을 수 없는 기타와 캐스터네츠가 도입되고 더불어 발구르기가 시작되었다. 따라서 노래(칸테), 바일레(춤), 기타(토케)가 삼위일체로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플라멩코가 완성되는 것이다. 무용수의 끝없이 움직이는 손동작은 이상과 꿈을 잡으려는 것이고 하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는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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