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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영국 완전일주 여행

영국 완전일주 여행 - 북웨일즈의 란디드노 해변

by 들국화/유채 2020. 8. 2.

2015 -06 - 16 ( 화요일 )

북아일랜드 관광을 마치고 남쪽의 아일랜드로 이동한다. 정식명칭은 아일랜드공화국(Republic of Ireland)이다. 12세기부터 약 700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아오다 1921년 12월 6일 독립했다. 당시 아일랜드 섬의 32개 주 중에서 동북부 6개 주는 영국령 북아일랜드로, 26개 주는 아일랜드자유국으로 분할되었다. 면적 70,280㎢에 국토의 3분의 2가 경작지와 목초지로 되어 있어 낙농 중심의 농업국이며, 인구 약 600만 명이고 주민은 켈트족이다. 언어는 제1국어가 아일랜드어(게일어)이고 제2국어는 영어인데 거의 모든 국민이 영어를 사용한다. 약 92%가 가톨릭교를 신봉하며 성공회는 3% 정도이다.

아일랜드는 1980년까지 “유럽의 열등아”로 불렸다. 그러나 정부가 세금문제와 노사문제를 해결하면서 외국기업이 물밀듯이 들어와 경제발전을 가속화 시켜 2007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불을 넘기도 했다. 그 후 계속된 경기 침체로 2011년 경제위기를 맞이했으나 지난해 IMF를 졸업했다. 아일랜드는 도로의 거리 표시를 mile에서 km로 변경하였고 통화(通貨)도 파운드화에서 유로화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담뱃값은 현재 한화로 환산하여 15,000원 쯤 되는데 2017년까지 곱절인 약 30,000원으로 인상시킬 예정이란다. 지난 5월 23일 국민투표를 통해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가이드 박윤영씨는 충북 괴산군 연풍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상경하여 효성그룹한국타이어에서 중견간부로 근무했다. 뜻한 바 있어 자진퇴사하고 토목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였으나 사업실패로 1997년 말에 가족들을 이끌고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이주한다. 온갖 시련과 역경을 잘 이겨내며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여 2010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아일랜드 이민자가 되었다. 현재는 더블린에 있는 여행전문사 Koreahouse의 대표로서 영국,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등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에게 관광안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일랜드로 국경을 넘을 즈음 가이드가 아이리시 탭 댄스 DVD동영상을 틀어준다. 100명이 넘는 남녀 댄서들의 현란한 발놀림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집시들의 댄스와 비슷하나 손과 팔을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특히 아일랜드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시카고 태생의 마이클 플래틀리(Michael Flatley)는 1초에 스텝을 35회 밟아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대가(大家)이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Dublin) 시내로 들어섰다. 이곳 날씨는 맑은 날보다 비오는 날이 많다는데, 오늘은 밀운불우(密雲不雨)라고 구름만이 짙게 끼어있다. 시내 중앙을 가로지르는 리피 강(River Liffey)의 북쪽은 비교적 새로운 시가지인데 남쪽은 오래된 구시가지이다. 게다가 동쪽으로는 아일랜드 해가 펼쳐진 항구도시이다. 도시 중심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 Dublin)는 더블린의 랜드마크이며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1592년 엘리자베스 1세가 옥스퍼드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모델로 하여 설립한 아일랜드 최고의 명문대학이다. 패트릭 대성당(St. Patrick's Cathedral)에 도착했다. 성 패트릭 (385~461)이 아일랜드로 와서 이교도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면서 세례를 했던 우물근처에 세워진 교회이다. 5세기경부터 교회가 있었으나 현존하는 성당은 13세기 초에 개축한 것이다. 패트릭은 세잎 클로버에 비유해 삼위일체를 설명했다고 하며, 이런 연유로 클로버는 아일랜드 국장(國章)이 되었다.

외관은 수수해 보이나 내부로 들어서니 정교한 조각들과 화려한 모자이크 바닥타일,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진 아름다운 창문들이 시선을 묶어버린다.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이며 패트릭 대성당 수석 사제(司祭)였던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가 그의 평생 여인 스텔라(Stella)와 나란히 잠들어 있다. 성 패트릭 동상도 보인다. 메인 홀 좌·우측에 각각 설교단(pulpit)과 성서대가 있는데 설교단의 대리석 조각이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다. 그 뒤로 아름답게 조각된 성가대석이 이어지고 안쪽 깊숙이 중앙제단이 있다. 헨델이 독일에서 영국으로 옮겨 간 뒤에 작곡한 “메시아”(Messiah)가 1742년 4월 8일 이곳에서 초연되었다.

성당 밖에는 Korea House 여직원 3명이 우리 일행을 마중 나와 있었다. 히드로공항 도착시점부터 오늘까지 우리들의 손·발이 되어 열심히 수고해준 황세윤양과는 정들자 이별이다. 그녀의 후임 박미정양은 문학과 열정의 나라인 아일랜드에 문학을 공부하러온 소설가 지망생이다. 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지만 글 쓰는 게 좋아서 이외수 작가에게 2년간 지도를 받기도 했다고 귀띔해준다. 아일랜드에는 1901년 이후 4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배출됐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조지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케트, 세이머스 히니이다. 이들 중 세이머스 히니를 제외한 3인은 유럽의 문화수도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예이츠는 아일랜드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다. 가이드가 예이츠, 셰익스피어, 워즈워드의 공통점을 질문한다. 그가 원하는 답은 이들 3인의 성(姓)은 제각각이나 이름(given name)은 모두 윌리엄(William)이고 부친의 이름은 모두 존(John)이라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문구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묘비에 새겨진 문구 “I knew if I staye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을 그렇게 번역했을 뿐이다.

한편 노벨문학상 제정 이전의 더블린 출신 유명작가로는 위에서 말한 <걸리버 여행기>의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와 <행복한 왕자>의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율리시스>의 제임스 조이스(James Joice)를 들 수 있다. 이른바 “더블린 3부작”이라고 불리는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스> 세 소설은 제임스 조이스가 겪었던 더블린 사람들의 실제 삶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소설 <율리시스>는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과 스티븐 디멀러스의 6월 16일 하루, 고작 24시간 동안 더블린에서의 행동과 생각을 기록한 것이다. 매년 6월 16일에는 더블린 전역에서 블룸스데이 페스티벌(Bloom's Day Festival)이란 축제가 펼쳐진다. 전 세계에서 온 율리시스 열성팬들이 의상을 갖춰 입고 주인공 블룸(Leopold Bloom)이 걸었던 거리를 걷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공교롭게도 축제 전날에 더블린에 도착하여 축제 당일에 더블린을 떠나게 되었다. 민족의 슬픔과 고통의 역사가 문학으로 승화되어 그토록 뛰어난 작가들이 많이 나왔나 보다.

우리는 입장마감시각인 오후 5시에 가까스로 맞추어 기네스 맥주 박물관(Guinness Brewery Storehouse)에 도착했다. 19세기에 지은 건물에 기네스맥주의 역사와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시청각 자료와 박물관이 있다. 평일에다 마감시간임에도 관람객들로 초만원이다. 창업자 아더 기네스(Arthur Guinness)는 1759년 레인포드양조장을 사들여 포터라는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양조장의 규모가 해마다 커져서 오늘날에는 면적 약 26만㎡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양조장이 되었다. 물, 보리, 홉 열매(hops) 그리고 효모(yeast) 4가지 재료를 그들만의 비밀 레시피(recipe)에 따라 혼합하여 제조한다. 동전이 밑바닥에 잔뜩 깔린 풀(pool), 곡물이 수북하게 쌓인 전시관, 제조공정에 쓰여 지는 각종 기계 전시장, 아더 기네스의 갤러리, 수제맥주 보관함 전시장 등을 둘러본다. 마지막으로 건물 옥상에 지어진 스카이라운지 시음장에 들어갔다. 원형 건물로 사방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더블린 시내가 훤히 보인다. 홀 중앙에서 서너 명의 직원들이 맥주를 잔에 따르는 시범을 보인다. 맥주잔에 아일랜드의 상징인 하프 악기의 문양이 그려져 있다. 방문객 자신들이 젓가락 같은 것으로 흑맥주가 담긴 잔들을 하나씩 두들겨 소리를 들어보고 마실 맥주잔을 선택하도록 한다. 우리들은 흑맥주 한잔씩 들고 창가로 가서 흑맥주 특유의 쌉싸래한 맛을 음미하며 시내 전경을 바라본다.

 

 

 

 

 

 

 

 

더블린 도심에서 서쪽으로 9마일 떨어진 사가트에 자리한 시티웨스트 호텔에서 새벽을 맞이한다. 774개 객실과 다양한 편의시설을 가진 대형고급호텔이다. 요금 폭탄 피하려고 출국 날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데이터 로밍을 해왔으나 여행기간 내내 인터넷 속도가 너무 느려 답답하던 나는 객실의 무료 무선인터넷을 열어보았다. 한국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다소 진정국면에 접어들고 오전 5시 30분이 되어 호텔건물 맞은편에 있는 골프장으로 나가 규봉이와 병호 내외를 만나 새벽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였다. 웨일스 홀리헤드행 페리를 타기 위해 아침 6시 40분에 호텔 문을 나섰다.

더블린항 부두에는 대형 페리선 2척이 정박 중이다. 율리시스(Ulysses)호와 익스플로러(Explorer)호이다. 홀리헤드에 본사를 둔 Stena Line 해운사의 페리선 및 일부 화물선 총 35척은 영국, 아일랜드, 네덜란드 및 프랑스의 정해진 항로를 운항한다. 익스플로러 호는 9층으로 이루어진 호화 페리선이다. 1인당 18파운드를 추가 지불하고 8층에 있는 식당 라운지로 들어갔다. 와인을 제외한 음료와 간단한 식사(cool food)를 마음대로 가져다 먹을 수 있고 신문과 잡지도 비치되어 있다. 창문너머로 아마 다시는 못 올 아일랜드 섬의 모습이 점점 멀어진다. 비록 주마간산 격의 관광이었으나 나의 버킷리스트에서 한 가지를 성취한 소중한 여행이다. 선미(船尾) 갑판으로 나가 망망대해를 바라본다. 피로감도 지루함도 사라진다.

웨일스(Wales)는 라틴어로 “숲 속에 사는 미개인”이란 뜻이며 그들은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가진 독립국가이다. 켈트족 국가인 웨일스는 1300년경부터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았지만 독립을 향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1998년 독립 통치권을 얻어 냈다. 우리가 탄 배가 도착한 홀리헤드항은 영국에서 가장 큰 섬 앵글시(Anglesey)에 속한 항구다. 버스가 브리타니아 다리(Britannia Bridge) 위를 지나는데 왼편으로 메 나이 해협 한복판 조그만 섬에 하얀 집 두 채가 보인다. 잽싸게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그 뒤로 메 나이 다리(Menai Bridge)도 보인다. 해안도로로 달리던 버스는 콘위를 지나쳐 북웨일스의 란디드노 해변(Llandudno Beach)에 도착했다.

 

 

 

 

 

 

 

 

해변을 따라 4·5층 호텔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호텔지붕 꼭대기마다 큰 굴뚝 속에 소형 굴뚝 몇 개씩 고개를 내밀고 있다. 영국은 과거에 방 수효에 비례하여 과세(課稅)하였던 시기가 있었다. 집 구조를 보면 방마다 벽난로가 있고 벽난로마다 굴뚝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지붕에 나와 있는 굴뚝 수를 헤아려 세금을 매긴 것이다. 집주인들은 굴뚝 수를 적게 보이려고 굵은 가짜 굴뚝을 세우고 그 속에 좁은 진짜 굴뚝을 설치했다는 이야기다. 란디드노 해변에는 유보장(遊步場)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해변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지역에는 큰 돌을 깔아놓고 바닷물이 닿지 않는 지역에는 아스콘으로 포장하여 많은 사람들이 산책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Kinmel Hotel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U-턴하여 콘위(Conwy)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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